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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이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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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정흠 작성일12-04-05 11:46 조회1,242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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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가난한 농사꾼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9세에 한글과 한문을 배웠으며
17세에는 과거에 낙방하였습니다.
1893년 동학에 입도한 후 18세의 나이로 수백명의 수하를 거느리게 되었고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지도자 최시형의 지시를 받고 황해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습격하였으나 관군에게 패퇴합니다.
20세에는 압록강 근방에서 만난 김이언과 함께 강계성의 관군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역시 실패하였고
21세였던 1896년 3월 여행 도중 황해도 한 주막에서 아침을 먹던 김구는
조선인 복장을 하고 있던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때려죽이고
일본인에게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선언합니다
석달후 체포된 김구는 인천으로 압송되어 사형선고를 받으나,
고종 황제의 형집행 보류지시를 근거로 사형집행예정일 하루전날 형 집행을 보류시켰습니다.
1898년 동료죄수들과 탈옥 후 삼남지방에서 도피하던 중 공주 마곡사의 승려가 되었고
1900년 지인을 찾아 내려갔던 강화도에서 3개월간 훈장일을 한 것을 계기로,
고향인 황해도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 및 계몽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1905년에는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벌이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였고
1907년에는 국권회복운동의 국내 최대 조직이었던 신민회에 가입하여 황해도 총감으로 활동하다가
1911년 안악사건, 105인 사건 등으로 수감되었습니다.
1915년 출옥한 후에는 동산평 농장의 농감으로서 농민계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였고
1931년 한인애국단을 만들어
1932년 1월 8일 이봉창의 도쿄 천황 암살 미수 및 윤봉길의 훙커우공원 폭탄투척을 지휘하였습니다.
1940년에는 중국 장개석 정부에 자금지원을 요청하여
임시정부 최초의 정식군대인 광복군을 조직하고,
광복 직전에는 미군 특수사령부(OSS)와 합동 훈련으로
조선에 잠수함으로 광복군을 침투시킬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독립운동은 사회주의계 독립운동가들과 민족주의계 독립운동가 등으로 분열되어 갈등이 많았고,
63세였던 1938년 김구 자신도 임시정부 내 불평세력이자 공산주의자인 이운환에게 총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이후 가슴에 남아있는 총알로 인해 거동의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1945년 8.15 광복 후에 귀국하여
1947년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반탁독립투쟁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949년 6월 26일, 서울의 자택인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습니다.
당시 김구의 나이는 74세였습니다. 끝~~~~~

댓글목록

김정흠님의 댓글

김정흠 작성일

좀긴가? 준서형 길면 ㅈㅅ☆☆☆☆☆★★★★★☆☆☆☆☆★★★★★☆☆☆☆☆★★★★★☆☆☆☆☆☆

정준서님의 댓글

정준서 작성일

굳ㅋ 잘했어

내이름?님의 댓글

내이름? 작성일

니가 직접 친거아니고 어딘가에서 복사해 뽑은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