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는 교회-집-학교(한겨례 2004.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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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랑방 작성일04-12-07 15:04 조회2,8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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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목)- 사회면 -\'노느매기 란\'
\"삶\"이 있는 교회-집-학교
기사 원문 링크
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8/2004/12/005100038200412011637015.html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림리 가는 길은 광릉수목원을 지난다. 길가 모든 나뭇잎이 시들해도 솔잎만이 홀로 겨울을 맞고 있다. 소나무가 유난히 푸르러 보인다.
지난 30일 무림리 버스정류장에서 시골길을 10여 분 가다보니 빈들의 끝머리에 원반형 야산으로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하얀 집들이 나온다. 사랑방교회다.
유치원 아이들이 마당과 텃밭을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사이로 어른들은 텃밭의 두엄을 뒤집고 있다. 사랑방교회는 지금 김치도, 두엄도 푹 삭히는 숙성의 계절이다.
이곳은 해발 250미터 분지여서 한여름에도 서늘할 정도로 다른 지대보다 기온이 낮다. 그런데도 두엄을 뒤집는 사내들의 얼굴엔 한기를 감쌀 온기가 감돈다. 이들은 모두 이곳 공동체 식구들로 정태일 담임목사(58)를 비롯한 교회 목사들이거나 이곳 대안학교 교사들이다.
이 공동체 가족은 6가정과 독신자 6명 등 모두 18명이다. 이곳에 방이 부족해 두 가정은 인근에 산다.
이 마을에선 유치부인 꾸러기학교와 초등부인 어린이학교, 중고등부인 멋쟁이학교 등 3개의 대안학교가 있다. ‘꾸러기’ 24명과 ‘어린이’ 21명은 자기 집에서 등하교하지만, ‘멋쟁이’ 30명은 교회 2층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일요일엔 교회였다가 평일엔 칸막이를 해 멋쟁이들의 학교가 된 곳에선 ‘멋쟁이’들이 자유롭게 앉아 기타를 치며 놀고 있다.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는 자율학교로 중고등생들이 함께 어울리며 공부해 검정고시를 치르는 ‘멋쟁이’들의 표정엔 그 나이 또래의 싱그러움이 풋풋하게 살아 있다.
소박한 반찬에
밥 같이 해먹고
3개의 대안학교선
아이들이 깔깔깔
나눌 돈은 없지만
나눌 정은 무한대
이 겨울이 따뜻합니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되자 당번 학부모가 준비한 밥과 시래깃국, 오징어볶음, 단무지를 교사와 ‘멋쟁이들’이 함께 어울려 상을 놓는다. 죽비 소리에 맞춰 잠시 기도를 한 다음 옆 사람과 나누는 것은 점심만이 아니라 정이다.
18명의 공동체 가족들 중 어른들은 대부분 목사, 부목사 부부이면서 대안학교 교사이기도 하다. 200여 명의 교인들 가운데서 자원한 이들도 무료 봉사로 여러 과목을 가르친다.
공동체가족들은 이렇게 점심식사는 학생들과 어울려서, 저녁식사는 18명이 모여 함께 나눈다. 어울리는 ‘삶’이 있는 공동체다.
정 목사는 교회는 조직이나 건물을 중시하고, 사랑과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지 않고, 학교는 지식만 전달하려 하고, 가정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자는 하숙집이 되어 모두 본질을 잃고 있다고 본다.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무뚝뚝한 성격이 천사로
삶을 나누다보면 변화와 치유가 일어난다. 2년 전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이곳에 들어온 어유성 부목사(42)는 “친구들을 무시하기도 하고 성격이 날카로웠던 중 1 큰아들이 멋쟁이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친구들을 이해하고 아주 부드러워져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가장 두드러지게 변한 것은 그 자신이다. 그의 아내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경상도 사내’가 예전에 비하면 천사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소망교회, 새문안교회 등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부목사로 있던 정 목사가 ‘삶’이 있는 교회를 목표로 서울 종로의 조그만 건물 한 층에 세 들어 사랑방교회를 시작한 것은 무려 20년 전인 1984년이었다. 공동체 교회를 꿈꾸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전원 부지를 구하러 다니던 정 목사는 89년 교회 여름수련회에 간 중학교 1년 외아들을 익사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92년부터 꾸러기학교를 이끌던 아내 이월영(51)씨는 피로를 이기지 못해 갑상선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곳에 땅 3500평을 구해 전원교회와 공동체의 꿈을 실현한 것은 오랜 아픔이 숙성된 97년이었다. 2002년엔 어린이학교와 멋쟁이학교를 열어 교회-가정-교육이 어우러지는 공동체의 틀을 갖추었다.
정태일 목사 오랜꿈 이뤄
하지만 ‘돈’이 삶의 중심에 선 세속에서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자들이다. 이곳에 사는 담임목사나 부목사나 교사들 모두 월급이 없다. 교회에서 각 공동체 가정에 지원하는 70만원이 전부다. 그나마 이 지원금도 최근 몇 년 새 갑자기 늘어난 것이다. 이곳에 온 뒤 교회 재정 부담이 늘어 몇 년 동안 지원금 한 푼 없다가 월 10여만 원을 받았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굶는 사람보다 음식을 남기고 버리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정 목사는 부족한 데서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넘치는 데서 오는 문제를 찾는다.
그래서 부자들이 더 못살겠다고 아우성인 세상에서도 이곳은 손을 펼쳐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다. 숲 속의 ‘사랑방’이 넉넉한 이유다.
■ 사랑방교회의 사랑 비결
상하가 없고 명령이 없습니다
사랑이 있고 자율만이 있을뿐
사랑방엔 피라미드식 조직이 없다.
교회에도 공동체에도 학교에도 수많은 사랑방들만이 있을 뿐이다. 채움방, 아름다운방, 섬김방, 모닥불방….
목요일 저녁 성서모임도 여섯 가정 정도로 이뤄진 각 사랑방끼리 한다. ‘삶을 나누는 생활’, ‘섬기는 종의 생활’, ‘자연을 사랑하는 생활’, ‘약한 자를 기준으로 하는 건덕생활’ 등의 생활 규범도 자발적인 성경 공부를 통해 교인들이 정한 것이기에 목회자의 독재적 리더십에서 나온 일방적인 지시와는 다른 힘을 지닌다.
각 사랑방은 1년에 두 차례씩 최소 1박 이상의 수련회를 가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깊은 삶의 얘기들을 나눈다.
사랑방교회엔 성가대도 따로 없다. 주일별로 각 사랑방이 예배준비나 성가대를 맡는다. ‘사랑방’이란 작은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코이노니아(성령의 소통)가 오늘의 사랑방교회의 화평의 밑바탕인 것이다. sarangbang.org. (031)544-1615.
포천/글·사진 조연현 기자 @hani.co.kr
\"삶\"이 있는 교회-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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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section-005100038/2004/12/005100038200412011637015.html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림리 가는 길은 광릉수목원을 지난다. 길가 모든 나뭇잎이 시들해도 솔잎만이 홀로 겨울을 맞고 있다. 소나무가 유난히 푸르러 보인다.
지난 30일 무림리 버스정류장에서 시골길을 10여 분 가다보니 빈들의 끝머리에 원반형 야산으로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하얀 집들이 나온다. 사랑방교회다.
유치원 아이들이 마당과 텃밭을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사이로 어른들은 텃밭의 두엄을 뒤집고 있다. 사랑방교회는 지금 김치도, 두엄도 푹 삭히는 숙성의 계절이다.
이곳은 해발 250미터 분지여서 한여름에도 서늘할 정도로 다른 지대보다 기온이 낮다. 그런데도 두엄을 뒤집는 사내들의 얼굴엔 한기를 감쌀 온기가 감돈다. 이들은 모두 이곳 공동체 식구들로 정태일 담임목사(58)를 비롯한 교회 목사들이거나 이곳 대안학교 교사들이다.
이 공동체 가족은 6가정과 독신자 6명 등 모두 18명이다. 이곳에 방이 부족해 두 가정은 인근에 산다.
이 마을에선 유치부인 꾸러기학교와 초등부인 어린이학교, 중고등부인 멋쟁이학교 등 3개의 대안학교가 있다. ‘꾸러기’ 24명과 ‘어린이’ 21명은 자기 집에서 등하교하지만, ‘멋쟁이’ 30명은 교회 2층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고 있다.
일요일엔 교회였다가 평일엔 칸막이를 해 멋쟁이들의 학교가 된 곳에선 ‘멋쟁이’들이 자유롭게 앉아 기타를 치며 놀고 있다.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는 자율학교로 중고등생들이 함께 어울리며 공부해 검정고시를 치르는 ‘멋쟁이’들의 표정엔 그 나이 또래의 싱그러움이 풋풋하게 살아 있다.
소박한 반찬에
밥 같이 해먹고
3개의 대안학교선
아이들이 깔깔깔
나눌 돈은 없지만
나눌 정은 무한대
이 겨울이 따뜻합니다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되자 당번 학부모가 준비한 밥과 시래깃국, 오징어볶음, 단무지를 교사와 ‘멋쟁이들’이 함께 어울려 상을 놓는다. 죽비 소리에 맞춰 잠시 기도를 한 다음 옆 사람과 나누는 것은 점심만이 아니라 정이다.
18명의 공동체 가족들 중 어른들은 대부분 목사, 부목사 부부이면서 대안학교 교사이기도 하다. 200여 명의 교인들 가운데서 자원한 이들도 무료 봉사로 여러 과목을 가르친다.
공동체가족들은 이렇게 점심식사는 학생들과 어울려서, 저녁식사는 18명이 모여 함께 나눈다. 어울리는 ‘삶’이 있는 공동체다.
정 목사는 교회는 조직이나 건물을 중시하고, 사랑과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지 않고, 학교는 지식만 전달하려 하고, 가정은 각자 방으로 들어가 자는 하숙집이 되어 모두 본질을 잃고 있다고 본다.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무뚝뚝한 성격이 천사로
삶을 나누다보면 변화와 치유가 일어난다. 2년 전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이곳에 들어온 어유성 부목사(42)는 “친구들을 무시하기도 하고 성격이 날카로웠던 중 1 큰아들이 멋쟁이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친구들을 이해하고 아주 부드러워져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은 가장 두드러지게 변한 것은 그 자신이다. 그의 아내는 “무뚝뚝하기 그지없던 ‘경상도 사내’가 예전에 비하면 천사가 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소망교회, 새문안교회 등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부목사로 있던 정 목사가 ‘삶’이 있는 교회를 목표로 서울 종로의 조그만 건물 한 층에 세 들어 사랑방교회를 시작한 것은 무려 20년 전인 1984년이었다. 공동체 교회를 꿈꾸며 자연과 어우러지는 전원 부지를 구하러 다니던 정 목사는 89년 교회 여름수련회에 간 중학교 1년 외아들을 익사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92년부터 꾸러기학교를 이끌던 아내 이월영(51)씨는 피로를 이기지 못해 갑상선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곳에 땅 3500평을 구해 전원교회와 공동체의 꿈을 실현한 것은 오랜 아픔이 숙성된 97년이었다. 2002년엔 어린이학교와 멋쟁이학교를 열어 교회-가정-교육이 어우러지는 공동체의 틀을 갖추었다.
정태일 목사 오랜꿈 이뤄
하지만 ‘돈’이 삶의 중심에 선 세속에서 이들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자들이다. 이곳에 사는 담임목사나 부목사나 교사들 모두 월급이 없다. 교회에서 각 공동체 가정에 지원하는 70만원이 전부다. 그나마 이 지원금도 최근 몇 년 새 갑자기 늘어난 것이다. 이곳에 온 뒤 교회 재정 부담이 늘어 몇 년 동안 지원금 한 푼 없다가 월 10여만 원을 받았었다.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굶는 사람보다 음식을 남기고 버리는 사람이 더 많잖아요.”
정 목사는 부족한 데서 문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넘치는 데서 오는 문제를 찾는다.
그래서 부자들이 더 못살겠다고 아우성인 세상에서도 이곳은 손을 펼쳐 서로 마음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다. 숲 속의 ‘사랑방’이 넉넉한 이유다.
■ 사랑방교회의 사랑 비결
상하가 없고 명령이 없습니다
사랑이 있고 자율만이 있을뿐
사랑방엔 피라미드식 조직이 없다.
교회에도 공동체에도 학교에도 수많은 사랑방들만이 있을 뿐이다. 채움방, 아름다운방, 섬김방, 모닥불방….
목요일 저녁 성서모임도 여섯 가정 정도로 이뤄진 각 사랑방끼리 한다. ‘삶을 나누는 생활’, ‘섬기는 종의 생활’, ‘자연을 사랑하는 생활’, ‘약한 자를 기준으로 하는 건덕생활’ 등의 생활 규범도 자발적인 성경 공부를 통해 교인들이 정한 것이기에 목회자의 독재적 리더십에서 나온 일방적인 지시와는 다른 힘을 지닌다.
각 사랑방은 1년에 두 차례씩 최소 1박 이상의 수련회를 가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깊은 삶의 얘기들을 나눈다.
사랑방교회엔 성가대도 따로 없다. 주일별로 각 사랑방이 예배준비나 성가대를 맡는다. ‘사랑방’이란 작은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코이노니아(성령의 소통)가 오늘의 사랑방교회의 화평의 밑바탕인 것이다. sarangbang.org. (031)544-1615.
포천/글·사진 조연현 기자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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